우리나라 전도를 그릴 때 누구나 가장 애를 먹는 곳이 안면도와 태안반도 지역이다．동쪽과 북쪽은 호흡을 가다듬고 쓰윽 윤곽을 잡으면 된다．남쪽도 일단 선 하나를 그어놓고 잘게 요철을 그려넣으면 무리가 없다．하지만 안면도를 포함한 이 지역은 일단 모양이 잘 나오질 않는다．여간 신경써서 그리지 않으면 십중팔구 볼품없는 지도가 돼버리곤 한다．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이 지역 해안선이 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안면도는 그리기 힘든 만큼 아직도 육지 사람들에게미지의 고장이다．
충남 태안에서 아담한 다리 하나를 건너면 곧바로 안면도다．한강다리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아 바다를 건넌다는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다리 위의 가로등도 양쪽 모두 16개밖에 안된다．다리 겉면은 얄궂게 빨간색으로 칠해져있다．약간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산뜻하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안면도하면 섬이니까 바다를 연상하기 쉽지만 안면도를 대표하는 것은 단연 `안면송'이다．안면송이란 안면도에서 자생하는 붉은 소나무를 말한다．찻길 양쪽으로 날씬한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있고 야트막한 야산마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키가 큰 소나무로 뒤덮혀있다．은은하고 시원한 소나무향이 온 섬을 휘감고 돈다．솔냄새를 한숨에 들이키며 굴곡이 심한 도로를 따라가다보면 마음이 심하게 들뜬다．계속 길을 따라가다보면 자동차가 솔냄새에 취해 하늘로 떠오를 것만 같다．
정신없이 솔밭길을 따라가다보면 승언리 자연휴양림이 있다．규모는 그다지 큰 편이 아니지만 50~80년생인 안면송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울창하게 서있다．숨쉴 때마다 맑은 공기가 젤리처럼 목구멍으로 넘어와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나무와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다보니 자연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서 살아왔는지 느끼게 된다．신발이 닿는 누런 흙이 부드럽기만 하다．가족들과 함께 휴양림의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장주덕씨(37·서울 양재동)는 “서울에서 3시간 거리밖에 안돼 부담스럽지 않고 휴양림과 해수욕장이 붙어있어 마음 편하게 쉬다갈 수 있는 곳”이라고 안면도를 평했다．자연휴양림 아래쪽으로는 굴거리나무 춘란 등 안면도에서나 볼 수 있는 수종이 분포돼 있고 바닷가에는 천연기념물인 모감주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자연휴양림을 떠나 자동차로 몇분 가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고깃배 10여척이 방포 포구에 얌전하게 정박해있고 멀지않은 바다에 4~5척의 고깃배가 떠있다．배마다 매달아놓은 알록달록한 깃발이 바람에 호들갑스럽게 퍼덕인다．3명의 아이들은 옷 입은 채 해안으로부터 제법 떨어진 바다에 들어가 저희들끼리 깔깔대며 놀고 있다．밀물때라 아이들 무릎께 물이 찰 뿐이다．포구 뒤로 바다 한 가운데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가 난데없이 솟아있다．외지인들은 두 암석중 어떤 것이 할미바위이고 어떤 것이 할아비바위인지 서로 우기는 호승지심(好勝之心)을 발휘한다．
물속에서 방금 나온 까만 피부의 중학생이 정확하게 답을 해준다．“큰 게 할미바위이고 작은 게 할아비바위예요”．
해안을 따라 10여분 걸어가면 꽃지해수욕장이 나온다．깨끗한 백사장이 해안가를 감싸안듯이 넓게 펼쳐져 있지만 왠지 소박하고 푸근하게 느껴진다．다른 지역에 비해 물이 더럽다고 알려진 서해안이지만 이 곳은 비교적 물도 깨끗한 편이다．때가 덜 묻은 탓일게다．모래알이 너무 잘아 진흙을 밝는 듯한 느낌이다．아이들은 깡통이나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며 조개와 게를 잡는데 열심이다．아직 본격적인 피서철이 아니라서 사람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푸근한 섬．혹시 그것이 `안면도의 힘'이 아닐까．1만여명의 주민이 어업외에 농사도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국민일보
〈여행길잡이〉
◇가는 길=안면도로 가려면 태안을 거쳐야 한다．서산에서도 649번 지방도로를 타면 안면도로 곧장 들어갈 수 있다．태안을 가기 위해선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안중까지 간 뒤 아산만과 삽교천을 거쳐 서산·태안으로 간다．경부고속도로 평택에서 안중이나 둔포를 거쳐 들어가도 아산만부터는 같은 길을 타게 된다．그러나 대부분 왕복 2차선 도로이기 때문에 휴가나 주말때는 정체가 심하다．경부고속도로 천안IC에서 온양~예산~덕산온천~해미~서산~태안 코스는 삽교천의 상습 정체구간을 피할 수 있고 온천과 문화유적을 둘러볼 수 있다．
◇맛집·특산물=포구와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횟집이 들어서있다．횟집들마다 부근 포구에서 갓 잡아올린 해산물을 사용한다．지금은 우럭과 도미가 한창 물이 올랐다．방포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물새집'(0455-673-4576)에서 내놓는 꽃게와 우럭을 넣고 갖은 양념을 한 `우럭잡탕'은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대 3만5천원，소 3만원)．
`안면도 왕새우'로 통하는 대하는 안면도 백사장 어항 앞에서 주로 잡히는 희귀한 어종．9월에서 12월까지 잡힌다．`오뚜기집'(0455-672-8659) 등에서 대하를 구워먹을 수 있다．서산·태안지방은 향기가 뛰어난 6쪽마늘의 주산지．대하와 꽃게 바지락 김 까나리액젖도 유명하다．
◇잠잘 곳=꽃지，방포，밧개，백사장，삼봉，바람아래 등 대부분의 해수욕장 주변에서 민박을 한다．비용은 4인가족 기준 2~3만원선이지만 성수기가 되면 3~4만원선에서 방을 구해야 한다．성수기때 수세식 화장실이 딸린 방을 얻으려면 4~5만원 정도 든다(안면읍사무소 0455-673-3081，안면법인어촌계 0455-673-9900)．특히 자연휴양림(0455-674-5017)에서 숙박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예약을 해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