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숙현(여행작가)> 매섭게 불어오는 겨울 바람에 코끝이 빨갛게 얼어붙는 데도 추운 줄 모르고 자맥질이며 깃털 고르기에 여념이 없는 철새떼. 무엇에 놀랐는지 호수 위에 앉았던 가창오리떼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해질 녘이 가까워 가는 파란 하늘이 순식간에 새까만 오리떼로 뒤덮인다. 한낱 날짐승에 불과할 뿐인데 노랗게 사위어 가는 태양 빛을 반사시키는 저들의 날갯짓이 어쩌면 이리도 감동스러운지….
<> 철새들의 작은 낙원 천수만
시원스럽게 뻗은 천수만 방조제 길을 따라 달리는 동안, 왼쪽으로는 서해, 오른쪽으로는 천수만의 푸른 물빛이 마치 하나인양 닮아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오른쪽 호수 위에는 까만 점들이 수없이 찍혀 있다는 것. 차 소리가 귀에 거슬렸는지 갑자기 푸드득, 날아 오른다. 셀 수 없이 많던 그 점들은 모두 철새였던 것이다.
충남 서산의 남면과 홍성의 서부면 사이에 놓인 방조제는 장장 8㎞에 이르는 바닷길을 막아 땅으로 일군 곳이다. 일명 ‘정주영 공법’이라 불리는 건설 당시의 이야기가 마치 전설처럼 남아 지금도 방조제 한가운데거대한 홍보판 위에 아로새겨져 있다.
방대한 현대농장의 가을걷이가 끝나고 너른 들판에 찬바람이 불어 겨울이 시작되면 철새들이 줄지어 날아온다. 들판에 떨어진 숱한 볍씨며 얕은 호수에서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이 철새들의 겨우내 식량이 된다.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인지 이 곳으로 날아오는 새들의 수도 점점 불어나100 여종에 가까운 철새들이 200만 마리에 이른다. 풍성한 먹이 외에도 넓은 호수가 있고, 호수 변으로 펼쳐진 드넓은 갈대밭까지 있어 그야말로 철새들의 낙원을 방불케 한다.
천수만의 탐조 포인트는 두 군데. 방조제 한가운데 홍보판 근처와 방조제의 끝 부분인 간월도 입구. 간월도 쪽은 호수 가장자리에 형성된 갈대밭의 그윽한 정취까지 맛볼 수 있어 사진촬영 그만이다.
탐조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찬바람에 그대로 맞서야 하기 때문에 복장을잘 갖춰 입는 것은 기본. 철새들의 모습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망원경도 준비해야 한다. 맨눈으로 보면 철새들은 그저 파란 수면 위에 둥둥 떠있는 까만 점으로 밖에 안 보인다.
철새들은 무척 예민하기 때문에 길에서 멀리 떨어진 호수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것이 보통. 얼핏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 때를 기다려야 한다.
철새 탐조의 매력은 수백, 수천 마리의 철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는 것이다. 몇 시간 추위에 떨면서 기다리다가도 이런 순간을 단 한번만이라도 맞이하게 된다면 그동안의 고생이 금새 사라질 정도로 장관이다.
철새는 11월경에 찾아와 겨울을 나고 이듬해 3월이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철새 탐조에 좋은 시기는 1월과 2월. 천수만으로 날아드는 새들은 시베리아에서 중국을 거쳐오는 것들인데 가창오리, 고니, 재두루미, 기러기 등이다.
천수만 방조제 A지구와 B지구 사이에 놓인 간월도는 무학대사가 도를 깨우친 간월암과 함께 전국 최고라 소문난 어리굴젓으로 유명한 곳이다.
철새 탐조 도중이나 이후 이 곳에 들러 식사도 하고, 간월암도 둘러 보고 가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다.
<> 철새와 갈대밭의 멋들어진 조화 금강하구
금강하구에 겨울이 오면 단연 돋보이는 것 두 가지가 있으니 바로 황금빛으로 익어 가는 갈대밭과 금강호를 가득 메운 철새들이다.
너무나 많은 철새들이 찾아들기 때문에 하구둑 주변은 온통 새들의 세상이 되고 만다. 하구둑 위로 난 도로를 달리면서도 철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속도를 늦춰야만 할 것 같아 조심스러워 지는데.
새파란 하늘에 V자를 그리며 날아가는 기러기떼, 인기척에 놀라 수면에서 갑자기 날아오르는 철새들의 날갯짓 소리, 평화롭게 수면 위를 떠다니다 고기를 잡으러 물 속으로 사라졌다가는 이내 다시 나타나는 오리떼들. 그리고 유유히 자태를 뽐내며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고고한 고니….
금강하구의 철새는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이 곳을 잊지 않고 매년 찾아오는 새들만 해도 흑부리오리, 흰뺨검둥오리, 쇠오리, 가창오리, 청둥오리, 흰죽지, 황조롱이, 큰고니, 고니, 큰기러기, 재갈매기, 괭이갈매기, 갈매기, 댕기물떼새, 직박구리, 붉은머리 오목눈이, 멧새, 참새, 까지, 물총새 등 수십여 가지가 넘는다. 저어새, 큰고니, 개리, 잿빛개구리매, 새매, 황조롱이 등 세계적인 희귀조류가 많은 것도 특징.
또한 검은머리갈매기의 세계 최대관찰지역이기도 하다. 철새들이 가장 많은 시기는 1월 초순으로 8만여 마리가 도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하구는 금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길목으로 갯벌이 잘 발달되어 있고 하구둑 공사로 생긴 넓은 금강호에 많은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어 철새들이 몇 달 머물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호수 중간 중간에 생성되어 있는 사주는 철새들의 은신처로 이용되는 갈대가 자랄 수 있는 공간.
하구둑 바깥쪽에 자리잡은 장항 앞 유부도에는 모래톱이 많아 철새들이 먹이를 구하러 즐겨 찾는다.
철새가 많아지자 이들을 보기 위한 탐조인들의 숫자 역시 늘어 최근 철새 탐조대를 만들어 따뜻한 실내에서 편안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금강변에 만들어진 탐조대는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여행자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 위로 구불구불 흘러내리는 금강이 군산에 이르러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금강하구둑이 놓이고, 그 옆으로 금강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공원에 서서 보면 오른쪽으로는 하구둑의 갑문이,왼쪽으로는 바다와 자그마한 갈대밭이, 강 건너편에는 장항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 놓여있다.
여기서 보는 강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맑고 파랗다. 공원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운치 있는 갈대밭이 나오고, 이 갈대밭과 금강, 바다, 항구가 서로 어우러진 일몰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 영화에도 출연한 아름다운 갈대숲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배경이 된 신성리 갈대밭은 영화에서 보던것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폭 200m, 길이 1㎞이상, 전체 7만여평으로 수치상으로 볼 때도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갈대밭의 장관은 보는 이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금강변에 자리잡은 이 갈대밭은 특히 늦은 오후 해가 서쪽 하늘에 걸릴 때 가장 아름답다. 서쪽을 향해 서서 갈대밭을 바라보면 햇살이 노랗게 반짝이는 금강과 갈대의 검은 실루엣이 어우러져 멋진 광경을 연출한다. 바람이라도 한줄기 불어갈라치면, 서걱서걱 거리며 갈대끼리 서로 어깨를 비비는 소리가 여간 운치 있는 게 아니다.
한산면소재지에서 강경 쪽으로 5분 정도 가다가 삼거리에서 금강변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3㎞ 정도 가면 된다. 서천에서 한산행 시내버스를 타고 한산 연봉초등학교 앞에서 내려 걸어갈 수 있다.
* 교통
# 왕모대 포구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로 빠져나간다. 홍성 시가지 반대쪽으로 622번 국도를 따라 ‘천수만’이라는 표지를 따라 계속 간다. 천수만 A지구 방조제 끄트머리 부근에 간월도가 나오고, 간월도를 지나 더 가면 B지구 방조제를 지나 안면도로 이어지는 길이다.
# 금강하구둑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가다 서천IC나 북군산IC로 나간다. 두 군데의 중간 지점 즈음에 금강하구둑이 놓여있다. 하구둑 북단(서천쪽)에 작은 공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여기서 철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하구둑 남단에는 제법 규모 있는 금강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 맛집
간월암 들어가는 입구에 횟집들이 몰려있다. 간월도 어리굴젓 탑이 놓인곳으로 자그마한 시장도 들어서 있다. 여러 차례 매스컴을 탄 적이 있는대천횟집이 맛집으로 꼽힌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대하와 꽃게는 물론 싱싱한 생선회도 좋다. 식사에 따라나오는 맑고 담백한 바지락국이나 생선회 다음에 먹는 얼큰한 매운탕이 주인장의 손맛을 짐작하게 한다. ☎041-933-7121
간월도에서는 어리굴젓이 특산물이다. 간월도 어리굴젓은 알이 작고 연해 겨울 반찬으로는 제일로 친다. 가판대 위에 시식코너까지 준비해 놓고 있으므로 실컷 맛 본 다음 구입하면 된다. 가격은 1㎏당 10,000원∼15,000원 정도. 어리굴젓 외에도 여러 가지 젓갈류를 함께 팔고 있다.
군산에서는 이 지방의 독특한 먹거리라 할 수 있는 쇠고기 쟁반(압강옥 063-452-2778)과 생선탕(가시리 063-446-4613), 대하찜(군산횟집 063-442-1114) 등이 인기 있다. 쇠고기 쟁반은 소의 뱃살을 삶은 육수에 수육과 만두, 메밀면 등을 넣고 끓인 전골요리. 특유의 감칠맛이 있다. 1인분 12,000원. 대하찜은 청주와 조미료를 넣어 찐 대하에 미나리, 콩나물, 당근, 쑥갓 등 갖은 양념을 해 볶은 야채를 같은 접시에 담아 낸다.
작은 접시(2인분) 60,000원.
* 숙소
천수만은 하루 코스로 다녀오기 충분하다. 1박2일 코스로 잡고자 한다면홍성이나 태안, 안면도에 잠자리를 구하는 것이 좋다. 금강하구둑 역시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당일여행이 충분한 곳이나 좀더 여유로운 여행을 원한다면 서천이나 장항읍, 군산 등지에 묵을 곳이 많다. 군산시내에는 군산관광호텔(063-443-0811∼3)을 비롯해 많은 여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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