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타오른 천년사랑 1억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건강/생활] 2001년 11월 29일 (목) 10:34
지아비 승언과 아내 미도의 뜨거운 천년사랑이 활활 타오른다.이제는 헤어지지 말자고 애원하는 미도를 실루엣으로 감싸며 무심하게도 해가 떨어진다.진홍색 물감을 풀어놓는 바닷물이 순식간에 먹물빛으로 변한다.천년의 세월을 그래왔듯이 부부는 잠시나마 또 헤어져야할 운명이 한스럽다.못다한 사랑이 서러워 꽃지바다 방부석이 되어 재회했건만 짖캺게도 지는 해와 차오르는 바닷물은 오늘도 어김없이 그들을 갈라놓는다.
태안반도 최남단에 4차선 연륙교로 이어놓은 섬아닌 섬 안면도.
서해품에 포근하게 안긴 안면도에는 밧개 꽃지 샛별 바람아래 등 이름조차 아름다운 11개의 해수욕장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특히 해변을 따라 해당화와 매화꽃이 많았다하여 ‘화지(花池)’라고 불리기도 하는 꽃지해수욕장은 변산 채석강·강화 석모도와 함께 서해안 3대낙조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
꽃지의 한낮은 명도차가 분명한 한폭의 풍경화다.
쭉쭉 뻗은 미녀다리를 연상케하는 해송 군락의 짙은 솔향에 취해 백사장을 밟는다.멀리 코발트빛 수평선 너머로 무인도가 점점이 떠있고 그 사이로 어선 몇척이 한가롭다. 금가루를 뿌린듯 눈부신 폭 300m 길이 3.2㎞의 백사장엔 찬바람을 맞으며 서로의 어깨를 감싼 젊은연인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발자국을 남기며 철지난 추억을 만들고 있다.잔잔한 파도가 밀려와 추억을 지우고 연인들은 질세라 또 추억을 새기고…
꽃지백사장에는 떡고물같은 고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유심히 살펴보면 떡고물 사이로 성냥개비 굵기만한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그 사이로 새끼손톱 절반도 안되는 달랑게들이 분주히 오가며 집을 짓느라 정신이 없다.불청객이 나타나자 순식간에 구멍속으로 몸을 숨긴다.가만히 살펴보면 한두마리가 아니다.수백 수천 수만마리가 백사장을 가득 메운채 스멀거린다.
꽃지의 상징은 천년의 사랑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할미 할아비 바위.해상왕 장보고의 부하 승언장군이 출전명령을 받고나가 돌아오지 않자 아내 미도가 일편단심 기다리다 한을 풀지못하고 죽어 방부석이 되었다는 순애보의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썰물때면 온갖 바다생물로 생태계의 보고를 이루는 갯바위가 드러나고 할미 할아비 바위 주변엔 강태공과 석굴캐는 아낙네들로 분주하다.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굴껍질이 진주처럼 아름답다.금방 캔 석굴 만원어치면 두세명이 실컷먹고도 남는다.애닯은 전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정하게 손잡고 갯바위를 거니는 젊은부부 한쌍때문에 할미 할아비 바위가 시샘를 한다.
할미 할아비 바위 사이로 해가 가라앉는다.하늘과 바다를 온통 벌겋게 물들이며.이때부터 꽃지는 두터운 질감의 유화가 된다.포구로 돌아오던 어선 한척이 반쯤 가라앉은 해속에 갇혔다.낙조의 황홀경에 빠져 정신이 아득해있는 사이 미처 초승달이 마중을 나와 있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초승달이 희미한 빛을 뿌릴때쯤 꽃지해변엔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별이 쏟아진다.
이른 아침 새벽안개에 휩싸인 안면도 자연휴양림을 산책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거리. 안면송이라고도 불려지는 적송은 고려시대부터 궁궐이나 선박을 만드는데 사용되던 목재로 키가 20∼30m를 넘는다.
적송이 밤새 만들어 놓은 상큼한 피톤치드(나무들이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위해 뿜어내는 방향성 물질)를 맡으며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 솔숲을 걷는다.숲속 갈림길마다 그림같은 통나무집이 한채씩 나온다.빽빽한 아름드리 적송 사이로 아침햇살이 빛의 물결을 이루고 숲속벤치에 다정하게 앉아 두런거리는 노부부의 모습이 부럽다.꽃지낙조에서 과거와 미련에 젖어보고 적송숲속에서 미래와 희망을 설계해 본다.
휴양림내 산림전시관엔 장낫(산불진화용 낫) 도끼 등과 물레판 함지 함박 등 나무로 만든 옛날 목기들이 전시돼 있어 자녀들의 산교육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